문학/오늘 읽고 싶은 시와 글

나의 한 평생/김병연(김삿갓)

석보 2008. 12. 29. 21:52

             나의 한 평생

                          -김병연-

 

    새도 둥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저절로 가슴 아파

  짚신에 대지팡이 천리 길을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천지 집 삼았네

   남의 탓도 못하고 하늘 원망도 못하니

    세모에 서글픔이 가슴에 가득하네

   어려서는 즐거운 세상이라 생각하며

     한양이 나고 자란 고향인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 누렸고

   꽃 피는 장안의 명승지에 집 있었네

   이웃들은 아들을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에 출세하기 기대들 했는데

      머리칼 겨우 자라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 바다 되듯 집안이 망하였네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 민심 박해지고

    부모 상을 마치자 집안 황폐하였네

   남산 새벽 종소리에 짚신 끈을 매고

     동방 풍토를 돌며 시름으로 가득찼네

      마음은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요

       형세는 울타리에 뿔 박은 양과 같네

        남녘 지방 옛부터 나그네 많다지만

     부평초 내 신세 벌써 몇 년이 지났나

   머리 굽실거림이 어찌 본래 모습이리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이 늘었네

      이리 살며 세월을 차츰 잊어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 아득하기만 하네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 뿐

      천금의 부자와 만석꾼 부자들의

        후하고 박한 가풍 고루 맛 보았네

     신세가 궁박하니 멸시하는 눈총 받고

     세월이 갈 수록 느는 것은 흰머리 뿐

    돌아가기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죽도록 길 위에 떠돌아야 하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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