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 읽고 싶은 시와 글

'익숙한 것과의 결별'중에서/구본형

석보 2009. 10. 10. 22:01

                         '익숙한 것과의 결별'중에서

                                                                                    -구본형-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캐러밴과 함께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워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탄불의 어두운 어느 카페에서 몇 개월의 오랜 여정의 피로를 술 한 잔으로 아니면, 히말라야가 보이고 그 산 위의 눈이 녹아 내려 이룬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며칠을 지내며, 둥근 보름달이 그 호수에 비치는 것을 보고 싶다. 아니면 가족 모두 캐나다나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곳으로 이민을 갈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는 것은 또한 아니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이기도 하고, 저녁에 좋은 사람과 나눈 빛깔이 고운 포도주이기도 하다. 마음속의 꿈이기도 하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기도 하다. 수퍼에서 산 몇 마리의 코다리이기도 하고, 스칠 때 얼핏 나눈 웃음이기도 하다.

삶은 작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상의 일들이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모여 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전체의 삶을 이루는 세부적 내용이다. 바로 일상이 모여 작은 개울이 되어, 강처럼 흐르는 삶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이 그냥 흘러가게 하지 말라. 내일이 태양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것은 내일을 위한 것이다. 오늘은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아쉬워하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내버린,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