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 읽고 싶은 시와 글
등잔/도종환
석보
2008. 2. 11. 00:30
등잔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 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